Wandererfantasie

2019. 05. 25. Wachau, Österreich

BERNARDINVS 2019. 6. 16. 23:55

아침부터 서역 (Westbahnhof)으로 가서 멜크 (Melk)로 떠났다. 나는 전날의 음주와 피곤함으로 기차에 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는데, CL은 멀쩡했다. 역시 괜히 두간소가 아니다.

멜크에는 베네딕토회의 멜크 수도원 (Stift Melk)이 있다. 멜크 역에서 내리면 바로 언덕 위에 수도원이 보이고, 사람들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수도원 정문에 도착하게 된다.

Stift MelkAbt-Berthold-Dietmayr-Straße 1, 3390 Melk (구글지도 링크)

어제 산 바하우 티켓 (Wachau-Ticket, EUR 65.00)에는 '빈  멜크 (기차), '멜크 수도원 입장 교환권', '멜크 → 크렘스 (유람선)', '크렘스 → 빈 (기차)' 총 네 종류의 표가 포함되어있다. 멜크 수도원 입장 교환권을 매표소에서 입장권으로 교환하고, 한국어 미니 가이드북을 하나 사서 (EUR 4.50) 셀프 가이드를 하며 구경했다.

멜크 수도원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한다. (안 읽어봄.) 내부의 도서관이 유명한 곳이라 소설의 배경이 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나에겐 도서관보다도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제일 멋있었다.

Stift Melk, Melk

내부에는 멜크 십자가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과 베네딕토회의 삶과 영성에 대한 전시품들이 있다. 여유롭게 관람하고 싶었으나, 앞뒤로 우리를 둘러싼 그룹 가이드 투어 때문에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영어 가이드 투어였으면 귀동냥이라도 했을 텐데. 도서관을 지나면 대성당에 도착하게 되는데, 린츠 근교의 성 플로리안 수도원 (Stift St. Florian, 아우구스티노회) 대성당의 내부와 비슷한 느낌이나, 규모가 더 크고 조각들도 더 장대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하게 되는 곳은 역시 기념품점. 열쇠고리와 수사님들이 만든 와인을 사서 (하루 종일 들고 다녀야 했다...) 나왔더니, 처음 구경을 시작하게 되는 계단 앞이었다. 다른 시대에 온 것 같은 골목이 오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Stift Melk, Melk

수도원 옆에는 정원이 있는데, 첫 느낌은 수도원과는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정원이라는 것. 하지만 정원 뒤쪽으로 돌아가 나오는 산책로의 평온함은 정원 정면의 느낌과 전혀 다르다.

Stift Melk, Melk

수도원을 내려와서 멜크 시내 (혹은 읍내)에서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멜크와 크렘스를 오가는 유람선 회사는 두 개가 있고, 바하우 티켓으로 둘 다 탈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유람선을 골라타면 된다. 선착장 가는 길에서 두 회사의 직원이 나와서 판촉(?)을 하길래 Brandner의 젊은 남자 직원은 의욕이 없어 보여 DDGS Blue Danube의 중년 여자 직원에게 교환했으나... 이번 여행 최대의 실수였다.

유람선 승선 시간까지 약 한 시간 정도 남아, 선착장 앞의 다리를 건너갔더니 숲길이 나왔다. 햇빛이 내리쬐는 날, 우거진 나무 아래 벤치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바람에 꽃씨가 흩날리는 것을 보니, 마치 어느 한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했다.

Melk

우리가 타기로 한 DDGS Blue Danube의 출발 예정 시각은 Brandner 보다 5분 뒤였는데, Brandner는 제시간에 출발했지만, 우리의 Blue Danube는 무려 30분가량 연착되었고, 심지어 선착장도 Brandner 보다 멀었다. 유람선이 들어올 때까지 선착장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는데, 강한 햇빛 아래 머리가 익을까 봐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실제로 유럽인들은 햇빛을 너무 많이 받으면 머리색이 탈색된다고 한다.) 인고의 시간 끝에 배를 타고, (전혀 푸르지 않은) 도나우 (Donau) 강을 따라 내려가며 크렘스산 와인 한 잔과 함께 경치를 구경했다. CL이 '학부생 시절 여행 다닐 때에는 유람선이나, 와인 한 잔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배낭 메고 다녔는데, 나이가 조금 들고 돈을 벌긴 벌었구나'라는 이야기를 했다.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우리는 안될 거라는 비관적 예언은 당연히 따라붙는 결말.

Wehrkirche St. Michael, Mosinghof

유람선은 슈피츠 (Spitz)와 뒤른슈타인 (Dürnstein)을 지나 도나우 강가의 크렘스 (Krems an der Donau)로 향한다. 뒤른슈타인 선착장 바로 옆 뒤른슈타인 수도원 (Stift Dürnstein, 아우구스티노회) 성모승천성당의 푸른색 종탑은 하늘과 똑같은 색으로 그 날 본 경치 중에 제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Stift Dürnstein, Dürnstein

크렘스에서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Brandner를 보고 우리의 실패를 다시 깨닫고, 크렘스 구시가지를 구경한 다음에 빈 프란츠-요제프 역 (Franz-Josefs-Bahnhof)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나는 바로 잠들었지만, 여전히 멀쩡하신 CL님. 마라샹궈가 없는 쾨벤하운에 사시는 CL님을 위하여 며칠 전에 알아낸 중국식당으로 모시고가 마라돼지곱창볶음과 마라새우볶음을 시켜 배 터지게 먹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CHINA KITCHEN NO.27Linke Wienzeile 20, 1060 Wien (구글지도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