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9. 14. 이곳에 서서 친구들을 보내고

유튜브 자동재생을 해두었더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가 흘러나오고 있다. SG와 나는 원래 엄마들끼리 친구였다. 수염 같지도 않은 수염이 나기 시작하던 때에 우리는 처음 만나 같이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그 뒤엔 같은 아파트로 이사해서 같은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그는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고, 나는 아직도 어느 여름밤, 그 집의 서재에서 둘이 앉아 밤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마음이 격변하던 시기에 서로의 꿈과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아직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친구인 그와는 언제 만나도 반갑고 무슨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사이이지만, 우리의 거리는 그때와 얼마큼 달라졌을까.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을 했다.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을 정도로 어렸을 적엔 가족끼리 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러 다녔고, 조금 자라서는 룸메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일주를 했고, 친구와 커다란 배낭을 가득 채워서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기차와 두 발로 여행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시절엔 이전에 가보지 못한 곳을 누비며 혼자라는 자유를 만끽했다.

언제나 여행에서 돌아오면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에 발을 담그고 다시 떠날 계획을 했다. 이번엔 일주일간 두 모임의 친구들과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이제 안도감과 편안함은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나는 그저 손 아래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어떻게든 움켜쥐려고 하는 무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CL과 JH누나와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자마자 친해졌다. 우리는 동아리 내 같은 부서였고, 궂은일을 함께 했고, 매일 술을 마시러 다니고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했다. 학교 버거킹에서 먹고 난 쓰레기를 버리다가 식판을 놓치곤 당황해서 어버버 하던 신입생이었고, 술 마시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을 부르던 주정뱅이들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일상을 공유했고,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가족에게도 못할 말들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전 직장에서 EH형은 내 옆자리였고, YR누나는 내 앞자리였다. 함께한 시간은 일 년도 채 되지 않는데, 언제 친해졌는지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회사 사람들을 모아서 여행을 다녀오고, 함께 새해를 보냈다. 면접보고 돌아와서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은 EH형이었고, 내가 떠난다고 했을 때 YR누나는 우리 엄마보다도 더 많이 울었다. 형은 그 모든 일 이후에도 나를 보러 오겠다며 비행기표를 가지고 있었다. 겨울에 우리는 또 어디로 떠나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도 관심 없을 정도로 진부한 '삶은 여행'이라는 말. 또 다른 누군가는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즐겁다'라고 말했다.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가지 않을 생각으로 떠나왔다. 나의 삶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 되었다. 그래서 너무 두렵다. 여행하는 이에게는 그저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이겠지만, 나에게는 기약 없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내 감정이 언젠가 그저 옅은 미소 정도로 남을까 두렵다.

며칠 전 그들이 앉아있던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그저 그곳에 남아서 아무 문제도 없는 듯이 살았다면 모두와 오랫동안 함께 지낼 수 있었을까?'를 재차 물으며, '나는 받아들여야 해. 나는 강해질 수 있어.'라고 되뇐다. 내일 하루가 지나고 일상이 시작되면, 언제나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부산스레 움직이며 그 순간에 충실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기록하여, 언젠가 겨울 햇살과 같은 감정이 남았을 때에, 다시 보며 내가 얼마나 내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했었는지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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