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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erfantasie

2019. 09. 06. Wien, Österreich

드디어.

매주 있는 연구소 소셜 아우어 따위는 버리고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S-Bahn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바르샤바에서 빈으로 오는 비행기. 입국장 앞에 서서 전광판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없던 표시가 approaching으로 바뀌고 어서 landed가 되길 기다린다. 내가 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으니까, 나오는 사람에겐 나오면서 왼쪽. 제대로 말해준 것 맞겠지? 혹여나 나와서 반대방향으로 갈까 봐 조마조마하며 자동문을 쳐다본다.

아니 그런데 웬걸. 오기로 한 사람 말고 엉뚱한 얼굴이 나온다.

서로 10초간 멍하니 바라보고 속으로 'What the hell is he doing here?'를 외친다.

아, 나 이 느낌 알아. 연구소 식당에서 줄 서 있는데 서로 5초간 정적과 함께 바라보다가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했던 J. 그 때와 똑같은 기분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지난 겨울 면접 때 호텔 같은 방 썼던 룸메이트 O. 이곳의 다른 연구소 박사과정에 합격해서 오게 되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는데, 오늘 공항에서 만날 줄이야. 미국에서 출발해 모스크바에서 환승해서 빈으로 왔단다. (대체 왜?) 짐을 트롤리에 한가득 싣고, 차 예약해 둔 것 찾으러 가야 한다며, 조만간 만나서 맥주 마시자고 하는 이 친구. 다시봐도 미국적이다 역시. (아직까지 안 만났다. 미국에도 밥 한 끼 먹자 같은 문화가 있나?)

뜻밖의 인물을 보내고, landed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왜 만들어 놓은거야 대체) 형과 누나가 나온다. 한국인들의 어색한 재회의 포옹. (스웨덴 그 친구들 이후로 발전이 없다.) 재촉하여 S-Bahn을 타러 간다. 하필 오는 열차는 엄청나게 오래된 열차.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데, 그라피티로 덕지덕지 칠해진 고철이 덜컹거리며 굴러왔다. 보통 빨간색으로 예쁘게 칠해지고 다음 종착지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신식 열차가 다닌다고.

마주 보고 앉아 빈 시내로 향한다. 몇 달만에 보는데도 어제 헤어지고 오늘 보는 기분. 그래, 그리웠던 이 기분. 덜컹거리고 시끄러운 구형 열차 안에서 독일어 간판 읽는 법을 알려준다. 그냥 보이는 대로 읽으면 돼요! 그리고 빈에서 벗어날 때까지 끝없이 나온 예외들. '아! 근데 그건 다른 규칙이 있는데...' '보이는 대로 읽으면 된다며!'.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국제 쿠팡맨이 된 형이 문간에 서서 내가 부탁했던 물품들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선물 보따리를 늘어놓는다. 누나가 발리에서 사 온 타악기들을 안겨주고 형이 너 국수 많이 해 먹는 것 같은데 같이 해 먹으라며 통조림들과 괄도네넴띤을 툭 놓는다. '어우, 이런 걸 무겁게 왜 들고 와요. 빈 손으로 오라니까! 배고프죠, 빨리 밥 먹으러 가요.' 어떻게 고맙다고 말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되는대로 말을 내뱉고 황급히 화제를 돌린다. 바보 같다.

Addicted to Rock Stadtbahnbögen, U-Bahn Bogen 186-188, 1190 Wien (구글지도 링크)

걸어서 간 버거집. 슈트라센반이 다니는 야외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종류 별로 시킨다. 역시 유명한 집이라 맛있다. 유럽에 있고, 날씨가 좋다면 무조건 야외에서 밥을 먹어야지! 접대의 관습을 마치고 돌아와 씻고 웰컴파티 시작. 그간의 회포를 풀며, 긴 시간 비행을 한 사람들과 일주일 내내 일한 나 모두 우리가 서울에서 항상 그랬듯이 시끄럽게 떠들다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진짜로 다시 만났구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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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02. Paris, France

우리가 묵은 호스텔은 파리 북쪽의 운하 옆에 있어 경치가 뭇 호스텔의 그것과는 다르다. 운하를 보며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짐을 챙겨서 마지막 행선지로 향했다.

HY도 가톨릭 신자라 파리에 온 김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자고 해서, WJ형이 강력하게 추천한 (안 가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 같은 분위기로 추천함.) 생 퇴스타슈 성당 (Église Saint-Eustache) 미사에 갔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사목적 이유로 주님부활대축일을 오늘로 미뤄서 지내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가 주님승천대축일을 휴일로 지내기 때문에 오늘 유럽에서는 부활 제7주일 미사를 바친다. 

Église Saint-Eustache2 Impasse Saint-Eustache, 75001 Paris (구글지도 링크)

Église Saint-Eustache, Paris

생 퇴스타슈 성당에는 생 쉴피스 성당 못지않은 오르간이 있다. 그 오르간을 연주하는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도 있고. 하지만 오르간보다 더 감동적이고 위대한 것은 이 곳의 거룩한 전례였다.

대오르간의 즉흥연주를 시작으로 사제단이 입장한다. 사제도 여러 명, 복사도 여러 명에 부제와 흰색 비레타를 쓴 의전수도회 수사들도 같이 입장한다. 성가대가 없이 성악가 두 명이 회중을 이끈다. 사제가 제대 앞에서 복음을 낭독하는 동안 복사가 피운 향은 제대를 감싸고, 흡사 주님의 말씀이 구름 위에서 선포되는 듯한 효과를 낸다. 말씀의 전례 때 제대 앞에서 노래하던 성악가 두 명은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자 제대 뒤로 가서 노래하는데, 성당을 곱게 울려 마치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성가대오르간과 대오르간은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 같다. 함께 입장한 나이 많은 사제들과 복사들, 의전수도회 수사들은 사제석 양쪽에 앉아서 회중의 모범이 되어 거룩한 희생 제사에 참여한다.

이렇게 거룩한 전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사제, 부제, 수사, 복사, 성악가, 오르가니스트, 전례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함께 아름답게 지어진 성당은 땅 위에 하늘나라를 만들어내었다. 전례가 진행되는 내내 높은 창문에서 그림처럼 내려오는 빛은 이 미사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었다.

Église Saint-Eustache, Paris

미사가 끝나자 밥티스트 플로리앙 마를 우브라 (Baptiste-Florian Marle-Ouvrard)가 후주를 즉흥으로 연주했다. 생 쉴피스 성당 다니엘 로트의 주님승천대축일 미사 후주가 정교하고 섬세했다면, 오늘의 이 후주는 힘 있고 호소력이 있었다. 마지막에 스탑을 다량으로 열고 성당을 울려대는 화음을 듣고 어떻게 전율하지 않을 수 있을까.

Église Saint-Eustache, Paris

5일간 프랑스에서 본 것 중에 생 퇴스타슈 성당의 미사가 제일 감동적이었다. 이번 여행이 당분간 마지막 여행이 될 텐데, 그 끝이 이렇게 감동적이고 장대하게 마무리되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끔찍하고, 거리에서 인종차별도 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일처리 속도 등 기분 나쁜 것 투성이었지만, 샤르트르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 그리고 파리의 미슐랭 레스토랑과 성당들은 지금껏 다녀본 그 어느 곳 보다도 나의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다.

생 퇴스타슈 성당 앞 레 알 (Les Halles) 역에서 HY와 헤어져서 RER B를 타고 샤를 드 골 (Charles de Gaulle) 공항에 내려 빈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니, 한 달도 안된 이 곳이 오래 살던 집으로 느껴진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왔지만, 내 삶을 제일 크게 바꾼 것은 이제 빈을 타지가 아니라 나의 집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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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01. Paris, France

HY를 마중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EUROLINES28 Avenue du Général de Gaulle, 93170 Bagnolet (구글지도 링크)

HY는 어젯밤에 케임브리지에서 버스를 타고 런던에서 환승해서 밤새 달려 파리에 아침에 도착한 것이다. 얘도 진짜 대단하다. 만나서 카르네 (Carnet) 10장을 사고 개선문 (Arc de Triomphe)으로 향했다.

답 없는 파리 지하철. 영어로 된 안내사항도 없이 개선문이 가까이 있는 샤를 드 골 에투알 (Charles de Gaulle - Étoile) 역에서 RER A가 정차를 안 한다. 설마 한쪽 방향만 안서나 (빈에서는 보통 공사를 한쪽 방향만 한다.)해서 다음 역인 라 데팡스 (La Defense) 역에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RER A를 탔다. 역시나 정차를 안 한다. 결국 오베르 (Auber)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나와서 나비고 (Navigo)를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전날까진 청바지를 입고 다녀서 주머니에 카드가 잘 있었지만, 더워졌다고 헐렁한 반바지를 입었더니 열차에 앉았을 때 흘러내렸나 보다. 하... 빈에서는 공사하는 곳이 있으면 몇 정거장 전부터 어느 방향 어느 역을 며칠부터 며칠까지 공사해서 정차 안 한다고 독일어와 영어로 계속 방송을 해준다. 역 게시판에 붙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빌어먹을 RER A를 안 탔으면 나비고를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텐데!

우선 당분간 HY가 산 카르네를 사용하기로 하고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오렌지 주스를 먹은 후, 지나가다 만난 빵집에서 디저트를 사 먹으며 수다 떨면서 개선문으로 걸어갔다.

Arc de TriomphePlace Charles de Gaulle, 75008 Paris (구글지도 링크)

거대한 개선문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서로 사진 찍어주고, 바로 앞의 샹 젤리제 거리 (Avenue des Champs-Élysées)로 향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샹송 '샹 젤리제' (Les Champs-Élysées)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다가 본 기념품점에 마음에 드는 열쇠고리와 엽서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더 싼 데서 사기로 하고 지나쳤지만 그 뒤로 그와 같은 양질의 기념품은 볼 수 없었다. 개선문에서 에펠탑 (Tour Eiffel)이 크고 또렷하게 아주 가깝게 보이길래, 가다가 점심거리를 사서 슬슬 걸어가면 되겠다고 희망찬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큰 오산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는 에펠탑... 학부 1학년 때 이런 착시에 속아서 학교에서 가까이 보이는 어느 대형마트까지 힘들게 걸어갔다 온 적이 있는데, 나란 인간 도대체가 깨달음이라는 것이 없다.

Tour EiffelChamp de Mars, 5 Avenue Anatole France, 75007 Paris (구글지도 링크)

Tour Eiffel, Paris

결국 기진맥진한 상태로 에펠탑이 보이는 샹 데 마 (Champ de Mars) 공원에 도착하여 근처 마트에서 와인과 점심을 사서 공원에 앉아 여유를 부렸다. 날씨는 맑고, 바람은 살랑이고, 와인은 맛있고, 수다는 재밌다. 설문조사를 가장하여 소매치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다가왔지만, HY는 어쩜 영어 못하는 척을 그리 잘하던지. (우리 모임 중에 HY가 영어 제일 잘한다.) 그 사람들도 성의가 없는 게, 한국에서 설문조사를 가장하여 포교하시는 분들은 소품에 노력을 많이 들이시는데, 이 사람들은 박스에 쓰이는 종이에 A4용지 한 장 달랑 붙여서 다니니, 속아 넘어갈 수가 없다. 공원에서 여유를 부리고 HY가 가지고 온 화장품이 다 떨어졌다고 몽쥬 약국 (Pharmacie Monge)에 가야 한다며 길을 나섰다.

"온 지 한 달도 안된 애가 무슨 화장품이 벌써 다 떨어져...? 설마 면세점에서 안 사 왔니?"

"ㅎㅎ... 빨리 몽쥬 약국 가자 ^^"

Pharmacie Monge Eiffel Commerce13-15-17, Rue du Commerce, 75015 Paris (구글지도 링크)

몽쥬 약국, 얼마나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갔으면 한국인 직원'들'이 있다. 나는 딱히 필요한 것도 없고, 따로 수하물을 부치지 않아 가지고 갈 수도 없어서 구경만 했다. 쇼핑을 마치고 흡족한 얼굴로 챔스 결승을 보러 가야 한다는 HY. 펍을 찾아 들어가서 경기를 보려고 했으나, 한국 시각으로 '(새벽) 네 시'를 파리 시각으로 알고 온 HY 덕분에 또다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펍에서 나와 세느 (Seine) 강에 가면서 또 디저트를 사서 강가에 앉아 먹었다. 입은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넣어주어서 행복한 상태이지만, 몸은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만신창이. 둘 다 지쳐서 말없이 앉아있는데, 저녁은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야겠다는 HY가 갑자기 폭풍 검색을 하더니 한 자리가 남은 레스토랑을 찾아서 예약했다. 가는 건 좋은데 이런 거지꼴로 미슐랭 레스토랑에 출입 가능한 지부터 걱정되지만, 오늘밖에 시간이 없으니 어쩌랴.

예약 시간이 21:30이라 근처의 카페에 앉아서 타파스와 칵테일을 먹었다. 거의 로마 귀족이다. 하루 종일 먹기만 한다. 시간이 되어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Le Christine1 Rue Christine, 75006 Paris (구글지도 링크)

Le Christine, Paris

우리가 들어가는데 앞의 그룹이 극찬을 하며 나온다. 우리를 보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It is so light!"라고 하며 온갖 칭찬을 앞다투어 늘어놓고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간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리고 이내 그들이 한 말이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계속 먹었는데, 앙트레 (Entrée)는 입맛을 다시 돋우기에 충분했고, 모든 음식들이 삼키면 위로 넘어가지 않고 입에서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미식에 관한 만화에서 혀 끝에서 맛이 느껴진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심한 과장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혀 끝이 저절로 맛을 찾아다니더라. 그렇게 정신없이 감탄하며 두 시간 반 동안 식사를 하고,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숙소로 향했다.

파리의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은 정말 여느 레스토랑과는 다른 차원에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HY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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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 31. Auvers-sur-Oise, France

느지막이 일어나 HY형과 세느 (Seine) 강 가에 가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형에겐 곧 박사 디펜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나도 정신 차리고 보면 막중한 부담감 앞에 놓여있겠지.

오늘은 또다시 파리를 탈출하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로. 생 라자르 역 (Gare Saint-Lazare)과 북역 (Gare du Nord)에서 갈 수 있는데, 점심 먹었던 곳에서 생 라자르 역이 이동하기 편해 그곳에 짐을 맡기고 다녀오려고 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생 라자르 역에는 물품보관소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빌어먹을 프랑스), 결국 다시 돌아가 예약해 둔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북역에서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St Christopher's Inn | Hostel in Paris Canal159 Rue de Crimée, 75019 Paris, France (구글지도 링크)

체크인 해주는 직원이 신입인지, 엄청 오래 걸렸다. 인터넷으로 예약 다 하고 온 건데 왜 오래 걸리는지 알 수가 없다.  방은 넓고 깨끗하다. 엄청 오랜만에 호스텔에 묵게 되었는데, 옛날에 배낭여행하던 생각도 나고, 조금 어려진 기분이다.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북역으로 향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파리 5 존 안에 있기 때문에 별도의 티켓 구입 없이 나비고 (Navigo)로 다녀올 수 있다. 북역에서 바로 가는 열차는 없고, 한 번 환승해야 한다. 환승지는 때에 따라 다르니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길로 가면 된다.

나에게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매력은 번잡한 파리를 벗어나서 갈 수 있는 조용한 마을이라는 것도 있지만,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라는 것.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을 방랑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네덜란드 쥔더르트 (Zundert)에서 태어나 브뤼셀 (Brussel), 헤이그 (Den Haag), 파리 (Paris), 아를 (Arles), 생 레미 (Saint-Rémy)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이곳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그의 방랑이 끝이났다. 이곳에서 그는 70일도 채 머물지 않았지만, 8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야말로 자신을 불태워서 그림을 그려나갔던 것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에 내려서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관광 안내소가 나온다.

Office de Tourisme d'Auvers-sur-Oise Sausseron ImpressionnistesParc Van Gogh, 38 Rue du Général de Gaulle, 95430 Auvers-sur-Oise (구글지도 링크)

관광안내소에서 마을 지도를 받아서 (한국어판이 있다.) 고흐의 그림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면 된다. 역시나 번잡한 파리를 벗어났으니, 쉬엄쉬엄 여유를 가지며 걸어 다녔다.

Auberge Ravoux, Auvers-sur-Oise

고흐가 묵었던 라부 여관 (Auberge Ravoux). 여관 바로 맞은편에는 오베르 시청 (Mairie d'Auvers-sur-Oise)이 있다.

Mairie, Auver-sur-Oise
La Mairie d'Auvers-sur-Oise le 14 juillet (Private collection, Chicago)

길을 올라가다 보면 오베르 성 (Château d'Auvers)이 나온다. 별로 감흥이 없는 정원을 보고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묘사된 것처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숲길이 나온다.

Auver-sur-Oise

문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짧은 숲길을 지나면 갑자기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무엇이 자라는 밭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프링클러 한 대가 물을 뱉고 있고, 더운 햇살을 피해 아이들이 스프링클러를 따라다니며 물장난을 치고 있다. 이 얼마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광경인가!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고 지나가는 관광객도 기분이 좋은지, 나와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한 가족도 웃으며 나에게 "Bonjour"라고 말한다. 그렇게 미소를 띠며 조금 걸어 나가면 마침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광경이 나온다.

Champ de blé, Auver-sur-Oise
Champ de blé aux corbeaux (Van Gogh Museum, Amsterdam)

그림이 그려진 바로 그곳에 서서 한 위대한 인간이 바라봤던 시야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서, 나는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I’ve seen many things, my friend, but you’re right... nothing... quite as wonderful as the things you see. (Doctor Who, Season 5 Episode 10, 링크)

밀밭을 지나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 묘지 (Cimetière d'Auvers-sur-Oise)가 나온다. 이곳에 바로 그 위대한 인간과 그를 평생 동안 도왔던 동생이 함께 누워있다.

Cimetière d'Auvers-sur-Oise, Auver-sur-Oise

수북이 덮인 풀 위로 한가운데 피어있는 해바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묘지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엔 오베르 쉬르 우아즈 성모승천성당 (Église Notre-Dame-de-l'Assomption d'Auvers-sur-Oise)이 있다.

Église Notre-Dame-de-l'Assomption, Auver-sur-Oise
L'Église d'Auvers-sur-Oise (Musée d'Orsay, Paris)

빈센트 반 고흐는 어느 날 숲에 가서 리볼버로 자살 시도를 하고 라부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황급히 달려온 동생 테오도르 반 고흐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둔다. 테오도르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성당의 신부에게 장례미사를 부탁했지만 신부는 개혁교도인에다가 자살을 시도한 이의 장례를 교리에 따라 '당연히' 거부했고, 빈센트의 장례는 라부 여관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테오도르는 형이 떠난 후 급격히 쇠약해져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의 부인은 남편을 형의 옆 자리에 묻는다. 빈센트의 장례를 거부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성당에 이 그림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톨릭 교회는 변화했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교리에 갇혀서 보지 못하는 곳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앞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느즈막히 파리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우며 HY가 케임브리지를 출발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잠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운이 좋아 음악에 많이 노출되어 좋은 음악을 들으면 전율을 느끼고 감동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회화를 보는 시야는 그만큼 자라지 못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감동받은 그림이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었다. 어렸을 적 비디오테이프에서 본, 둘리가 세계 여행하며 '네덜란드' (비디오 작가 진짜...)에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는 장면과, 학부 전공 기말고사 후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Don McLean'의 'Vincent (Starry, Starry Night)'를 들려주시던 장면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런 기억들이 암스테르담에서 날 감동받게 하였을 것이다. 회화에 대한 기억은 반 고흐에 대한 것 밖에 없으니, 나에게 빈센트 반 고흐는 특별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아직은 이 예술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마 당분간도 모를 테니 그만이 계속 특별하리라.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글은 언제 보아도 울컥하는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끝을 맺어야 합당하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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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 30. Paris, France

파리로 행선지를 정하고 나서 구경할 것들을 찾아보다가, 놓치면 안될 것을 찾아냈었다. 이것 때문에 파리로 가야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생 쉴피스 성당 (Église Saint-Sulpice)에서의 주님승천대축일 미사. 이유는 이 성당의 수석 오르가니스트가 다니엘 로트 (Daniel Roth)라는 것. 생 쉴피스 성당 홈페이지(링크)에서 로트 선생님이 주님승천대축일 미사에서 연주하시는지 확인하고 파리로 왔다.

Église Saint-Sulpice2 Rue Palatine, 75006 Paris (구글지도 링크)

Église Saint-Sulpice, Paris

생 쉴피스 성당 내부는 마치 그리스 신전 같은 육중함이 있었다. 제대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전주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세계 최고의 오르간 중 하나인 생 쉴피스 성당 오르간 소리를 내가 직접 듣고 있다니! 그러나, 거장 중의 거장 로트 선생님이 전주를 연주하시는데 모든 사람들이 떠들고 있다. 감사할 줄 모르는 파리 시민들. 더 큰 문제는 성가대이다. 보통 신자들로 구성된 성가대였는데, 로트 선생님이 반주를 하시는데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로트 선생님의 거룩한 연주와 못 들어줄 성가대가 함께한 미사. 마치 어제 파리의 짜증과 프랑스 빵의 행복을 동시에 느낀 것처럼, 또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번 여행의 테마인가.

Église Saint-Sulpice, Paris

미사가 끝나고 드디어 대망의 후주-즉흥연주-가 시작된다. 내 앞쪽에 계신 신자 분은 미사 후에도 열심히 기도 중이었는데, 기도하시다가 방해된다는 듯이 오르간을 째려본다.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역시 감사할 줄 모르는 파리 시민들이다 정말. 로트 선생님은 멜로디 하나 가지고 교향곡을 한 편 만들어내셨다. 지금부터 아무것도 안 하다가 빈으로 돌아가도 전혀 아쉽지 않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다 이루었다.

HY형과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맛집에 갔다. 역시 현지인 맛집이 최고다.

Cosi54 Rue de Seine, 75006 Paris (구글지도 링크)

HY형은 약속이 있어 나중에 기숙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파리에 온 목표를 이루었으나,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구경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10년 전에는 미술관 위주로 구경하였으니 이번엔 건축물 위주로 구경하기로했다. (나는 미술관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생 쉴피스 성당 근처에 팡테옹 (Panthéon)이 있어 향하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가는 길에 인종차별 당하는 것은 덤. 로트 선생님의 거룩한 연주로 고양된 기분이 확 가신다. 정말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파리.

PanthéonPlace du Panthéon, 75005 Paris (구글지도 링크)

팡테옹은 우리나라의 국립현충원 같은 곳으로, 프랑스의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정문에는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팡테옹은 과거 파리의 수호 성녀 생트 쥬느비에브 (Sainte-Geneviève, 성녀 제노베파) 성당이었는데, 훈족의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지킨 그녀의 일대기와 잔 다르크 (Jeanne d’Arc, 아르크의 성녀 요안나)의 일화가 1층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프랑스를 지킨 성인들의 이야기가 교차할 때 가장 안쪽에는 "ANGELUM GALLIAE CUSTODEM CHRISTUS PATRIAE FATA DOCET (그리스도께서 갈리아의 천사에게 조국의 운명을 수호하라 말하신다.)"라고 적힌 모자이크화를 배치해 애국심을 드높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지하 묘지에는 볼테르 (Voltaire)를 비롯하여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마리아 스쿼도브스카-퀴리 (Maria Skłodowska-Curie) 등 프랑스의 위인들이 누워있다.

하지만 내가 팡테옹에 온 이유는 푸코의 진자 (Le Pendule de Foucault)를 보기 위해서. 푸코는 1851년 이곳에서 이 유명한 진자 실험을 통하여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였다. 비록 원본은 부서지고 현재 팡테옹의 돔에 매달려 있는 것은 복제품이지만, 원본이든 복제품이든 1851년부터 계속 이곳에서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고 있다.

Panthéon, Paris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도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불타버린 파리 성모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6 Parvis Notre-Dame - Pl. Jean-Paul II, 75004 Paris (구글지도 링크)

Cathédrale Notre-Dame, Paris

지붕과 첨탑이 완전히 소실된 것이 보인다. HY형이 어젯밤에 말하길, '불타기 전에 앞에 갔었는데, 그땐 이렇게 불타버릴 거라고 상상도 못 했지. 이 성당은 영원할 것 같았는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더라.' 어젯밤의 결론은 '그래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하자'로.

파리 성모대성당을 한 바퀴 돌아 맞은 편의 성 경당 (Sainte-Chapelle)으로 향했다. 성 경당은 왕실 전용 경당으로, 빈으로 치면 호프부르크 경당과 같은 것. 한참 동안 줄을 서서 짐 검사를 하고, 또 한참 줄을 서서 티켓을 사서야 하부 경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Sainte-Chapelle8 Boulevard du Palais, 75001 Paris (구글지도 링크)

Sainte-Chapelle, Paris

하부 경당은 평민들이 이용하던 장소라고 한다. '이미 충분히 화려한 색감으로 벽이 온통 칠해져 있는데, 왕실 전용의 상부 경당은 도대체 어떻길래?'라고 생각하며 상부 경당으로 올라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Sainte-Chapelle, Paris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향연이었다. 성서 전반의 내용들을 한 장면 한 장면 스테인드 글라스로 표현했다고 한다. 뒤쪽의 장미 스테인드 글라스는 요한묵시록의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샤르트르 성모대성당의 아름다음과 생 쉴피스 성당의 육중함은 없지만, 섬세함과 화려함은 그 어느 성당도 비길바가 못되었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부르봉 왕가만큼 합스부르크 왕가도 돈이 많았을 텐데 합스부르크는 정말 검소했구나!'라는 것. 이곳과 비교하면 호프부르크 경당은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쪽 벽면에는 복원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비디오가 있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이곳을 만든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현대에 복원한 사람들도 그만큼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저녁은 SY가 추천한 우동을 먹으러 갔다. 파리까지 와서 무슨 우동인가 싶었지만, 파리에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하니 미식가 SY를 믿고 가본다.

Restaurant Kunitoraya5 Rue Villédo, 75001 Paris (구글지도 링크)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안 갔을 텐데, 생 쉴피스 성당의 로트 선생님 오르간 연주부터 시작해서 탄성을 자아내는 성 경당까지, 이미 나의 마음은 한껏 고양되어 있어 좀 더 그 기분을 즐겨야 했고, 딱히 다른데 찾아가고 싶은 의지도 없어서 조용히 기다려서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우동 먹은 지 꽤 되었어서 더욱 맛있게 먹었다. 앞에 보이는 카르푸에서 와인과 먹을거리를 사서 기숙사에 돌아가 HY형이 돌아올 때까지 와인을 마시며 가족들과 신부님, 수녀님들에게 엽서를 썼다. 밤 10시가 다돼서야 깜깜해지는데 빈의 하늘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창밖으로 새로운 하늘을 바라보며 엽서를 쓰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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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 29. Chartres, France

새벽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속으로 '내가 미쳤지. 이런 시각의 비행기를 예약하다니.'를 되뇌며. 다시는 이런 무모한 비행기표 사지 않으리라. (하지만 가격을 보면 다시 이럴 확률이 농후.) 부랴부랴 공항에 가서 면세점에서 바하우 지역의 화이트 와인을 사고 비행기에 타서 다시 잠을 청했다.

솔직히 파리는 가고싶지 않았다. 원래는 HY를 보러 영국에 갈 예정이었으나, 영국에 보고 싶은 것이 별로 없고 돌아오는 비행기표 시각은 지금 이 비행기 시각보다 더 말도 안 되었기 때문에, HY와 중간지점인 파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HY는 토요일 아침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그동안 혼자 여유롭게 파리 근교를 여행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파리 근교에서 유학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HY형에게 연락하니 파리로 옮겼단다. 기숙사를 내어주시는 자비로운 HY형.

파리 샤를 드 골 공항 3 터미널에 내렸더니, 파리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와 걸어서 2 터미널로 가야 했다. 나비고 (Navigo)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섰다. 거진 한 시간을 기다려서 보증금 EUR 5.00 포함하여 EUR 27.80을 내고 받은 카드에 여권사진을 붙였다. 나비고 일주일권도 그렇고, 빈 일주일권도 개시를 언제 하든 그 주의 일요일 혹은 바로 다음 월요일 아침까지만 사용 가능한데, 한국이라면 절대 도입되지 않을 계산법이겠지. 나는 수요일에 도착해서 일요일에 떠날 것이니 어쨌든 나비고를 구입.

지난주 빈에서는 그래도 이 주 살아서 대중교통 노선에 대한 감이 있었지만, 파리는 정말 생판 모르는 곳이라 구글 지도에 나를 맡기고 가야한다. 행선지는 몽파르나스 역 (Gare Montparnasse).

Gare Montparnasse17 Boulevard de Vaugirard, 75741 Paris (구글지도 링크)

RER B를 타고 가다 생 미셸 노트르 담 (Saint-Michel Notre-Dame) 역에서 M4로 환승하는데 이정표가 무슨... 파리 10년 전에 왔을 때에도 다시 오고 싶은 곳이 아니었는데 역시나이다. 어서 파리를 벗어나야 한다.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하여 짐을 맡기러 보관소에 들어가려 했더니, 공항처럼 소지품 검사를 한다. '이건 또 뭐야.'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들어가서 쓰는 보관함 기계는 오직 프랑스어로만 사용방법이 적혀있다는 것. 물론 그림을 보고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파리 같은 관광도시에서 이런 큰 역 물품보관소에 프랑스어로만 적혀있다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샤르트르 (Chartres)로 가는 표를 사고 (나비고를 통해 5 존까지 가서 그곳에서 샤르트르행 표를 사서 가면 돈을 절약할 수 있지만 나는 그냥 편리함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매장에서 빵과 디저트와 커피를 샀다. 아! 그래도 프랑스가 빵은 최고다. 버터가 뭉텅뭉텅 들어간 프랑스식 빵이 제일 맛있다. 입에서 오는 행복감과 파리에 대한 짜증을 동시에 느끼며 기차를 기다리는데, 열차 출발시간 20분 전인데도 플랫폼이 안 뜬다. 10분 전에도 안 뜨고, 나의 머릿속에는 '설마 플랫폼이 이 층이 아니라 다른 층인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결국 7분 전에 안내 방송이 나오더라. 프랑스 정말 적응 안된다.

샤르트르 역에 내려서 시내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샤르트르 성모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이 눈 앞에 보인다. 이정표가 없어도 그냥 걸어갈 수 있을 정도. 들어가기 전에 대성당 앞 벤치에서 아까 사둔 초콜릿 파이를 먹으며 바람을 쐰 후 본격적으로 대성당 외부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16 Cloître Notre Dame, 28000 Chartres (구글지도 링크)

Cathédrale Notre-Dame, Chartres

아! 모든 문이 정교한 조각들로 장식되어있다. 전하려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시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교회로 들어가는 문. 조각들을 감탄하며 대성당 뒤 정원으로 넘어가니 십대 아이들이 친구의 생일을 깜짝 축하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날씨와 즐거운 광경. 대성당 뒤를 돌아 나오는 철제 문이 아름다워 계속 보고 있게 만들었다.

Cathédrale Notre-Dame, Chartres

반대편과 같이 정교하게 조각된 문들을 지나, 정문으로 들어가니 입이 벌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은 처음이다. 빛으로 가득한 장엄한 성당. 나에게는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전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Cathédrale Notre-Dame, Chartres

우선 오른쪽 측랑부터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한다. 중앙 벽제대를 둘러싸고 예수의 생애를 표현한 조각 벽이 있다. 성 가브리엘 대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는 장면, 어린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빈 무덤을 발견한 제자들 등등.

Cathédrale Notre-Dame, Chartres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 조각들이 정말 섬세하다. 장면 장면마다 감동하며 복원 중인 곳을 지나고, 부활하신 예수를 본 다음, 승천하시는 예수를 보는데, 너무 귀엽게 표현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Cathédrale Notre-Dame, Chartres

하늘로 올라가시느라 반 잘리신 예수. 이렇게 표현하는 건 처음 봤다. (회화에서 액자 바깥으로 나가시는 예수를 그린 작품이 있나?)

샤르트르 성모대성당은 당연히 바티칸 제 2차 공의회 전에 지어진 대성당이니 그 때까지는 주제대가 이 조각벽에 둘러 쌓인 벽제대였을 테지만, 전례개혁 후 신자들과 사제석 사이에 놓여진 큰 제대가 오늘날 주제대로 쓰이고 있다. 사제석과 조각벽으로 둘러쌓인 옛 주제대 앞은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두었다. 이 또한 다른 대성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라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Cathédrale Notre-Dame, Chartres

샤르트르 성모대성당은 언급했듯 아직까지 복원 중에 있는데, 복원 전과 비교하기 위하여 기둥의 일부분을 복원 전 상태로 남겨두었다. 대성당이 하얀빛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은 신랑을 모두 복원했기 때문인데, 아직 조각벽의 일부분과 측랑 및 익랑은 복원되지 않았다. 모든 내부가 복원되면 지금보다 더 빛으로 가득 찰 테니 훨씬 장엄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복원이 완료되면 꼭 다시 와야 할 곳.

대성당에서 나와 피카시에트의 집 (Maison Picassiette)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대도시에서 벗어났는데 빠르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주위 경치를 둘러보며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Maison Picassiette22 Rue du Repos, 28000 Chartres (구글지도 링크)

Maison Picassiette, Chartres

피카시에트는 그릇을 훔치는 자, 혹은 피카소 그릇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샤르트르의 도로 보수원과 묘지 청소부로 일했던 레이몽 이시도르 (Raymond Isidore)가 평생 동안 버려진 도자기와 깨진 향수병으로 자신의 집을 모자이크로 꾸며, 이 곳에 자신만의 도시를 만들었다. 버려진 조각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평범한 사람의 노력.

피카시에트의 집을 나와 느릿느릿 샤르트르 시내로 걸어가다 보니 외르 강가 공원 (Parc des Bords de L'Eure)에 들어가게 되었다.

Parc des Bords de L'Eure14 Rue du Faubourg la Grappe, 28000 Chartres (구글지도 링크)

Parc des Bords de L'Eure, Chartres

평화로운 공원을 거닐다가 생 피에르 성당 (Église Saint-Pierre)과 생 태냥 성당 (Église Saint-Aignan)을 구경하고 샤르트르 역에서 다시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이제 HY형을 만나러.

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17 Boulevard Jourdan, 75014 Paris (구글지도 링크)

파리 대학들의 학생들이 거주하는 국제기숙사. 짐을 풀고 맥주를 마시며 캠퍼스를 산책했다. 파리에서 부지를 내어주고 각 나라에서 건물을 지었다고. ('무슨 도둑놈 심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모르는 거래가 있었겠지.) 스위스관은 그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가 필로티 형식으로 지었고, 일본관은 일본 목조건축 특유의 지붕이 올려져 있고 교토에서나 볼 법한 작은 정원이 문 앞에 있다. HY형이 머물고 있는 한국관은 사괘를 상징하는 비대칭적인 선으로 벽면을 만들고, 태극의 두 색으로 내부를 칠해두었다. HY형과 빈에서 사온 바하우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오랜 회포를 풀었다.

파리는 예상대로 짜증이 치미는 곳이었지만, 샤르트르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샤르트르 성모대성당도, 피카시에트의 집도, 평화로운 마을을 거닐었던 것도. 프랑스에 오길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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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 26. Wien, Österreich

현지인 모드에서 벗어나 CL과 빈 관광하기 마지막 날.

금요일에 사둔 EUR 37.00짜리 입장권을 들고 호프부르크 경당 (Hofburgkapelle)의 미사에 갔다.

HofburgkapelleHofburg, 1010 Wien (구글지도 링크)

Hofburgkapelle, Wien

부활 제6주일 미사

그레고리오 성가
     - 빈 호프부르크 경당 교회 성가대
J. 하이든 - 짧은 미사 F 장조, Hob. XXII:1 "청소년 미사"
     - 빈 소년합창단
     - 빈 슈타츠오퍼 남성합창단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회원
     - 지휘: 조르디 카잘스

기도문은 그레고리오 성가로, 미사곡은 하이든의 미사곡으로 불리었다. 신자들이 아닌 관광객이 많았기 때문에 전례에 집중하기에는 조금 힘든 분위기였다. 앞에 계신 신부님 혹은 부제님이 일어서고 앉는 것 까지 사인을 주셔야 할 정도였으니... 그래도 관광객이 많다고 주교님 (혹은 그에 준하는)이 강론을 독일어로 먼저 하시고,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요약해 주셨다. 감동받았음.

하지만, 우리의 빈 소년합창단 솔로들은 음정과 박자가 불안하여 나의 소비를 슬퍼하게 만들었다. 나의 가설은 '1군 아이들은 투어에 가서 2군이 선 것이다'였고, CL의 가설은 '부활 대축일을 시작으로 제일 뛰어난 아이들부터 솔로로 세워서 부활 6주일인 오늘은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은 것이다' 였는데,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다만 나의 EUR 37.00... 입장권을 사지 않고 들어갔다면 즐거운 마음이었을 텐데! (미사 시작 전에 줄을 서면 뒤에서 서서 전례에 참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빈 소년합창단 분명 아동학대 같은 느낌이 있지만, 이 미사를 생각하면 조금 더 열심히 연습해도 될 듯.

미사가 끝난 뒤에 빈 소년합창단이 성가대석에서 내려와서 짧게 한 곡 불렀다.

Hofburgkapelle, Wien

Wien Mitte에 가서 공항행 S7을 기다리는 동안 케밥 하나 먹고 CL과 안녕. 이번 여행에서는 CL몫까지 내가 다 계산을 했는데, 그 돈은 나의 언젠가의 쾨벤하운 (혹은 덴마크령 어딘가) 여행에서 쓰기로 하였다. (같은 유럽이지만 환전해야 하는 유로와 덴마크 크로네.) 이제는 다시 빈 현지인 생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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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 25. Wachau, Österreich

아침부터 서역 (Westbahnhof)으로 가서 멜크 (Melk)로 떠났다. 나는 전날의 음주와 피곤함으로 기차에 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는데, CL은 멀쩡했다. 역시 괜히 두간소가 아니다.

멜크에는 베네딕토회의 멜크 수도원 (Stift Melk)이 있다. 멜크 역에서 내리면 바로 언덕 위에 수도원이 보이고, 사람들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수도원 정문에 도착하게 된다.

Stift MelkAbt-Berthold-Dietmayr-Straße 1, 3390 Melk (구글지도 링크)

어제 산 바하우 티켓 (Wachau-Ticket, EUR 65.00)에는 '빈  멜크 (기차), '멜크 수도원 입장 교환권', '멜크 → 크렘스 (유람선)', '크렘스 → 빈 (기차)' 총 네 종류의 표가 포함되어있다. 멜크 수도원 입장 교환권을 매표소에서 입장권으로 교환하고, 한국어 미니 가이드북을 하나 사서 (EUR 4.50) 셀프 가이드를 하며 구경했다.

멜크 수도원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한다. (안 읽어봄.) 내부의 도서관이 유명한 곳이라 소설의 배경이 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나에겐 도서관보다도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제일 멋있었다.

Stift Melk, Melk

내부에는 멜크 십자가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과 베네딕토회의 삶과 영성에 대한 전시품들이 있다. 여유롭게 관람하고 싶었으나, 앞뒤로 우리를 둘러싼 그룹 가이드 투어 때문에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영어 가이드 투어였으면 귀동냥이라도 했을 텐데. 도서관을 지나면 대성당에 도착하게 되는데, 린츠 근교의 성 플로리안 수도원 (Stift St. Florian, 아우구스티노회) 대성당의 내부와 비슷한 느낌이나, 규모가 더 크고 조각들도 더 장대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하게 되는 곳은 역시 기념품점. 열쇠고리와 수사님들이 만든 와인을 사서 (하루 종일 들고 다녀야 했다...) 나왔더니, 처음 구경을 시작하게 되는 계단 앞이었다. 다른 시대에 온 것 같은 골목이 오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Stift Melk, Melk

수도원 옆에는 정원이 있는데, 첫 느낌은 수도원과는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정원이라는 것. 하지만 정원 뒤쪽으로 돌아가 나오는 산책로의 평온함은 정원 정면의 느낌과 전혀 다르다.

Stift Melk, Melk

수도원을 내려와서 멜크 시내 (혹은 읍내)에서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멜크와 크렘스를 오가는 유람선 회사는 두 개가 있고, 바하우 티켓으로 둘 다 탈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유람선을 골라타면 된다. 선착장 가는 길에서 두 회사의 직원이 나와서 판촉(?)을 하길래 Brandner의 젊은 남자 직원은 의욕이 없어 보여 DDGS Blue Danube의 중년 여자 직원에게 교환했으나... 이번 여행 최대의 실수였다.

유람선 승선 시간까지 약 한 시간 정도 남아, 선착장 앞의 다리를 건너갔더니 숲길이 나왔다. 햇빛이 내리쬐는 날, 우거진 나무 아래 벤치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바람에 꽃씨가 흩날리는 것을 보니, 마치 어느 한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했다.

Melk

우리가 타기로 한 DDGS Blue Danube의 출발 예정 시각은 Brandner 보다 5분 뒤였는데, Brandner는 제시간에 출발했지만, 우리의 Blue Danube는 무려 30분가량 연착되었고, 심지어 선착장도 Brandner 보다 멀었다. 유람선이 들어올 때까지 선착장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는데, 강한 햇빛 아래 머리가 익을까 봐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실제로 유럽인들은 햇빛을 너무 많이 받으면 머리색이 탈색된다고 한다.) 인고의 시간 끝에 배를 타고, (전혀 푸르지 않은) 도나우 (Donau) 강을 따라 내려가며 크렘스산 와인 한 잔과 함께 경치를 구경했다. CL이 '학부생 시절 여행 다닐 때에는 유람선이나, 와인 한 잔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배낭 메고 다녔는데, 나이가 조금 들고 돈을 벌긴 벌었구나'라는 이야기를 했다.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우리는 안될 거라는 비관적 예언은 당연히 따라붙는 결말.

Wehrkirche St. Michael, Mosinghof

유람선은 슈피츠 (Spitz)와 뒤른슈타인 (Dürnstein)을 지나 도나우 강가의 크렘스 (Krems an der Donau)로 향한다. 뒤른슈타인 선착장 바로 옆 뒤른슈타인 수도원 (Stift Dürnstein, 아우구스티노회) 성모승천성당의 푸른색 종탑은 하늘과 똑같은 색으로 그 날 본 경치 중에 제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Stift Dürnstein, Dürnstein

크렘스에서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Brandner를 보고 우리의 실패를 다시 깨닫고, 크렘스 구시가지를 구경한 다음에 빈 프란츠-요제프 역 (Franz-Josefs-Bahnhof)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나는 바로 잠들었지만, 여전히 멀쩡하신 CL님. 마라샹궈가 없는 쾨벤하운에 사시는 CL님을 위하여 며칠 전에 알아낸 중국식당으로 모시고가 마라돼지곱창볶음과 마라새우볶음을 시켜 배 터지게 먹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CHINA KITCHEN NO.27Linke Wienzeile 20, 1060 Wien (구글지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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