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에 해당되는 글 11건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9. 25. 즐거운 나의 삶

드디어 본격적인 박사과정이 시작되었다.

어제 그룹 리더와 디스커션 하러 들어가서 한 시간 동안 두드려 맞고 나왔다. 내가 공부를 덜한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장장 삼 개월 동안 내 동기 프로젝트에 집중하느라 내 프로젝트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사람에게 한 달이나 잃었다는 소리를 듣기엔 적잖이 억울했다. 게다가 나를 가르쳐줘야 할 선배도 가르치는 방법이 영 꽝인데.

이러나저러나 내가 간절히 바라서 온 곳이기도 하고, 사실 그동안 일이 별로 없어서 여기 와서 뭐 하고 있나, 졸업은 할 수 있을까, 온갖 걱정을 하던 차에 내심 이렇게라도 일하게 돼서 기쁘기도 하다. 지금의 그룹 리더가 나보다 아이디어가 많고, 나보다 더 비판적으로 논문을 읽고, 나보다 몇 발은 더 앞서서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곳을 전에 일했던 회사나 석사과정과 비교하기엔 미안할 지경일 정도이니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언제나 똑같은 대학원생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오늘은 기억하고 싶은 다른 감정을 적기 위하여 글을 쓴다.

연구소 면접을 보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WJ형이 합격 축하한다며 날 또 인신 공양 해버려서 어느새 명동성당 범우관에 감금되어 오르간 앞에 앉아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삼 개월 후에 떠나는 나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남들보다 네 배의 시간을 투자해서 가르치셨고, 그 여파로 퇴사하고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느긋하게 쉴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잘못된 희망은 동네 성당에서 몇 시간씩 오르간을 연습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선생님은 출국일 직전에 있는 연주회에 나를 올리시겠다고 선언하여, 새 제자로 하여금 한시도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는 장치까지 마련해두셨다.

떠나기 직전 선생님의 한 마디. "빈에 도착하면 여러 성당의 미사를 돌아다녀보면서 연주를 듣고 너와 맞는 선생님을 찾아서 연락드려." 듣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나의 우문에 선생님은 "들으면 다 알 수 있지. 그걸 왜 몰라?"라는 서늘한 말과 함께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다.

십 년, 이십 년 배워온 다른 악기라면 모를까, 겨우 삼 개월 배운 오르간을 내가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하지만 새 선생님을 꼭 찾아서 레슨을 받고 내년 오르간 투어에 합류하라는 선생님의 명령에 가까운 전언에, 그저 매 주일마다 나와 맞는 선생님이 있을지도 모르는 성당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파리 생 쉴피스 성당과 생 퇴스타슈 성당에서 나의 귀는 하늘에 닿아 버리고.) 어느 날 찾아갔던 한 성당에서 좋은 연주를 듣게 되어 조심스레 연락을 드렸더니, 학생이 스무 명이나 있어 더 이상 학생을 받기엔 어려워 대신 좋은 선생님을 추천해 주겠다고 하셔서 추천해주신 그분께 연락을 드리게 되었다.

이것도 참 미묘한 것이, 사실 한국의 선생님께서 내가 이곳에서 레슨 받았으면 하는 선생님이 그분이었던 것. (그러면 제게 그분께 가라고 직접 추천하시지 그러셨어요, 선생님.) 어렵사리 그분과 연락이 닿아 만나뵙고 레슨을 허락받게 되었다. 게다가 지난달 성모 승천 대축일엔 선생님이 일하시는 성당 신부님께 나를 인사시키고 오르간 키도 건네주셔서 연습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마련해 주셨다. 선생님께선 레슨은 9월 중순부터 시작하자며, 바흐 오르겔 뷔힐라인을 '처음부터 할 수 있는데까지 해와'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고 (도대체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왜 이러시는 건지...) 홀연히 휴가를 떠나셨다.

그리고 오늘이 드디어 첫 레슨.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펼쳐진 대림 시기 곡들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놀라웠다. 한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눈 앞이 환해지는 레슨이었다. 선생님은 앞으로 잘해보자며, 다음 레슨 때 우리가 할 것들과 그전에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시며 오늘의 레슨을 끝맺으셨다.

악기를 통해 음악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8년 전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시야를 넓히며 진심으로 기뻐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더욱 즐거운 것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나의 삶. 과연 그 누가 내가 빈으로 옮겨와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있는 연구소에서 학업을 하고, 이렇게 좋은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음악을 공부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분명 지금 이때가 훗날 나의 인생에서 제일 즐거웠던 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지금 기쁨으로 가득 찬 이 감정을 닳지 않게 조심스레 닦아, 틈날 때마다 꺼내보며 이곳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깨닫게 하는 거울로 써, 돌아보았을 때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게 하리라.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9. 14. 이곳에 서서 친구들을 보내고

유튜브 자동재생을 해두었더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가 흘러나오고 있다. SG와 나는 원래 엄마들끼리 친구였다. 수염 같지도 않은 수염이 나기 시작하던 때에 우리는 처음 만나 같이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그 뒤엔 같은 아파트로 이사해서 같은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그는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고, 나는 아직도 어느 여름밤, 그 집의 서재에서 둘이 앉아 밤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마음이 격변하던 시기에 서로의 꿈과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아직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친구인 그와는 언제 만나도 반갑고 무슨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사이이지만, 우리의 거리는 그때와 얼마큼 달라졌을까.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을 했다.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을 정도로 어렸을 적엔 가족끼리 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러 다녔고, 조금 자라서는 룸메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일주를 했고, 친구와 커다란 배낭을 가득 채워서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기차와 두 발로 여행했다.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시절엔 이전에 가보지 못한 곳을 누비며 혼자라는 자유를 만끽했다.

언제나 여행에서 돌아오면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에 발을 담그고 다시 떠날 계획을 했다. 이번엔 일주일간 두 모임의 친구들과 여행하고 돌아왔지만, 이제 안도감과 편안함은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나는 그저 손 아래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어떻게든 움켜쥐려고 하는 무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CL과 JH누나와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자마자 친해졌다. 우리는 동아리 내 같은 부서였고, 궂은일을 함께 했고, 매일 술을 마시러 다니고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했다. 학교 버거킹에서 먹고 난 쓰레기를 버리다가 식판을 놓치곤 당황해서 어버버 하던 신입생이었고, 술 마시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을 부르던 주정뱅이들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일상을 공유했고,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가족에게도 못할 말들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전 직장에서 EH형은 내 옆자리였고, YR누나는 내 앞자리였다. 함께한 시간은 일 년도 채 되지 않는데, 언제 친해졌는지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회사 사람들을 모아서 여행을 다녀오고, 함께 새해를 보냈다. 면접보고 돌아와서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은 EH형이었고, 내가 떠난다고 했을 때 YR누나는 우리 엄마보다도 더 많이 울었다. 형은 그 모든 일 이후에도 나를 보러 오겠다며 비행기표를 가지고 있었다. 겨울에 우리는 또 어디로 떠나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도 관심 없을 정도로 진부한 '삶은 여행'이라는 말. 또 다른 누군가는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즐겁다'라고 말했다.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가지 않을 생각으로 떠나왔다. 나의 삶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 되었다. 그래서 너무 두렵다. 여행하는 이에게는 그저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이겠지만, 나에게는 기약 없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내 감정이 언젠가 그저 옅은 미소 정도로 남을까 두렵다.

며칠 전 그들이 앉아있던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그저 그곳에 남아서 아무 문제도 없는 듯이 살았다면 모두와 오랫동안 함께 지낼 수 있었을까?'를 재차 물으며, '나는 받아들여야 해. 나는 강해질 수 있어.'라고 되뇐다. 내일 하루가 지나고 일상이 시작되면, 언제나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부산스레 움직이며 그 순간에 충실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기록하여, 언젠가 겨울 햇살과 같은 감정이 남았을 때에, 다시 보며 내가 얼마나 내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했었는지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8. 08. Widor in Wien

빈 예수회 성당 (Jesuitenkirche)에서 오르간 연주회가 있어 다녀왔다.

Jesuitenkirche, Doktor-Ignaz-Seipel-Platz 1, 1010 Wien (구글지도 링크)

Jesuitenkirche, Wien

오스트리아 오르가니스트 페터 프리제 (Peter Frisée)의 "Widor in Wien" 시리즈. 이곳 빈 예수회 성당에서 샤를 마리 비도르 (Charles-Marie Widor)의 오르간 교향곡을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 오르가니스트 비도르는 24살에 파리 라 마들렌 성당 (Église de la Madeleine)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카미유 생상 (Camille Saint-Saëns)의 조수로 일하기 시작하고 이듬해 파리 생 쉴피스 성당 (Église Saint-Sulpice)의 공식 오르가니스트 (Organiste titulaire)가 된다. 생 쉴피스 성당의 오르간은 비도르의 친구였던 아리스티드 카바예 콜 (Aristide Cavaillé-Coll)의 걸작으로 이 오르간에 매료된 비도르는 프랑스 오르간을 위한 교향곡들을 작곡하고 이 곡들은 현재 오르간 솔로 레파토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비도르는 생 쉴피스 성당에서 60년 넘게 공식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고, 후임으로는 비도르의 제자이자 조수였던 또 한 명의 프랑스 거장 오르가니스트 마르셀 뒤프레 (Marcel Dupré)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생 쉴피스 성당의 공식 오르가니스트는 장 자크 그뤼넨발드 (Jean-Jacques Grunenwald)를 이어 현재의 다니엘 로트 (Daniel Roth)로 이어져 오고 있다.

빈 예수회 성당의 오르간은 2004년에 독일의 오르간 제작자 하르트비히 슈패트 (Hartwig Späth)에 의해 재건되었는데, 카바예 콜의 작품인 리옹 생 프랑소와 드 살레 성당 (Église Saint-François-de-Sales) 오르간의 소리를 본따 재건했다고 하니 빈에서 비도르의 음악을 연주하기에 이곳만큼 적절한 곳은 없는 것이다.

오늘 연주하는 프리제는 올해 1월 파리 생 쉴피스 성당에서 미사 후 오르간 감상 시간 (Audition d'orgue) 비도르 사이클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 젊은 오르가니스트로, 현재 빈 암 쉬텔 (Am Schüttel)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고 있다. 

어느 음악이든지 음반으로 듣는 것보다는 실황으로 듣는 것이 더욱 와닿기 마련인데, 오르간은 특히 온 공간을 울리는 위용을 느끼려면 꼭 성당에서 들어야 한다. 오늘 프리제의 안단테 칸타빌레는 낭만주의의 정수였으며, 스케르초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피날레는 환희에 넘쳤다.

다음 "Widor in Wien"은 12월 15일로, 비도르의 오르간 교향곡 6번을 연주한다.

Jesuitenkirche, Wien

오르간 꼭대기 천장 아래에는 예수회 표어가 새겨져있다.

"AD MAJOREM DEI GLORIAM"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8. 03. Lichterfest an der Alten Donau

빈 토박이 L이 그룹채팅방에서 자신은 한 번도 안 가봤다고 (역시 현지인) 빛 축제(Lichterfest)에 가자고 해서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구경하러 가기로 하였으나, 기상악화로 일주일 미루어져서 어제 다녀왔다.

U1 Alte Donau 역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도나우 강가로 가면 전등을 매단 보트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날씨가 추울 줄 모르고 반팔 반바지를 입고 나온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앉아있어야 했다. 희끄무레한 빛을 내는 보트들은 별 감흥이 없어서 내년에는 아무래도 보트를 빌려서 강 위에서 봐야겠다며 신나게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기다리던 불꽃놀이 시간이 되었다.

An der Alten Donau, Wien

불꽃놀이 본지가 얼마만인지! 불꽃놀이는 사람 마음을 부풀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1구의 벨기에 맥주 집으로 가서 수다떠는 것으로 마무리.

Delirium Café ViennaKurrentgasse 12, 1010 Wien (구글지도 링크)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7. 13. Asiana 한인마트

한식은 서울에 있을 때도 잘 안 해 먹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들어가는 재료도 많아 1인 가구에게는 난이도가 있는 음식이었다. 원래 음식을 가리지 않고 딱히 한식을 그리워하지도 않아서, 이곳에 와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양식을 해 먹는 중이다.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요리할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레시피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따라 해보고 싶은 레시피들이 양식 베이스에 고추장을 조금 넣으라거나 매실청을 살짝 바르라는 식이라 할 것도 없겠다 한인마트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AsianaPraterstraße 35, 1020 Wien, (구글지도 링크)

U1 Nestroyplatz에 내려 Pratestraße 출구로 나오면 바로 간판이 보인다. 양조간장, 매실청, 고추장, 된장을 고르고 고춧가루를 담으려는데 대용량밖에 없어 사장님께 여쭤보니 친절하게도 조금 덜어서 주셨다. (한국인의 정!) 생각난 김에 박막례 할머니의 비빔국수를 해 먹어야겠다 생각하여 소면도 사고, 친구들과 나눠먹을 한국 과자 몇 개와 비상식량으로 쟁여둘 라면을 몇 개 샀다.

계산을 하며 (현금만 가능)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몇 구에 사느냐, 뭐 공부하느냐 등-를 나누고 U1을 탔는데 타고나서 참기름을 깜빡한 것을 발견해 다시 되돌아가서 참기름도 사왔다. 집 근처에 내리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빗속을 뚫고 마트에서 비빔국수에 들어갈 채소들을 사서 돌아왔다. 역시 우산을 챙기고 샌들을 신기 잘했다.

박막례 할머니 비빔국수를 시작으로 한식도 조금씩 연습하여 나중에 친구들 초대했을 때 대접해야지.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7. 11. Joo Friseursalon

이곳에 온 지 어언 두 달 정도 되어가니 머리 자를 때가 되었다. HL 박사님이 주 미용실 (Joo Friseursalon)을 추천해주셨다.

Joo Friseursalon 한인미용실Gärtnergasse 12, 1030 Wien (구글지도 링크)

오후에 예약하고 퇴근하고 집 가는 길에 들렸다. 사장님께서 언제 마지막으로 머리 잘랐는지, 원래 곱슬인지 혹은 염색해서 그런 건지, 이것저것 세세하게 물어보시고 머리를 정리해주시니, 순식간에 말끔해졌다. 사실, 빈에 얼마 없는 한인 미용실이라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솜씨가 대단하셔서 만족하며 나왔다. 유럽에는 머리 감겨주는 서비스가 없어 실제 시간도 단축.

남성 커트 가격은 EUR 15.00.

여쭈어보니 염색은 EUR 40.00이라고 한다. 처음 떠나올 때 유럽에선 염색이 어마어마한 가격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셀프 염색을 알아보려 했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다음번 머리 자를 땐 이 곳에서 염색도 해야겠다. 덴마크에 있는 CL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니 가격을 듣고 약간 분개하며(?) 빈에 머리 하러 와야겠다고...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7. 05. Kaleidoskop

며칠 전 영국인 A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단체방에 말해서 가게 된 Kaleidoskop – Film und Freiluft am Karlsplatz (카를 광장에서의 영화와 야외). (링크) 레셀 공원 (Resselpark)에서 매일 영화를 상영한다. 지겨운 수업도 끝났겠다, 금요일 저녁이겠다,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러 갔다.

ResselparkResselgasse 1, 1010 Wien (구글지도 링크)

오늘 영화는 2010년 뱅크시 (Banksy)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위키피디아 링크) 영화는 영어 (원어)로 이야기하고 자막으로 독일어가 쓰였는데, 중간에 프랑스어 나올 때마다 한국인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I think the joke is on... I don’t know who the joke is on, really. I don’t even know if there is a joke." (Banksy's former spokesman, Steve Lazarides)

영화 말미에 나오는 이 대사가 모든 것을 요약한다. 

애초에 미술에 문외한에,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유하고 싶은 욕구도 없기에 그저 주인공 티에리 (Thierry)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며 웃기만 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András Schiff)가 강의식 연주회 (lecture recital) 도중에 했던, '현대음악은 내 언어 (맥락상 현대음악 이전의 음악적 어법)와 맞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뱅크시가 비판하고자 하는, 작금의 시대가 현대 미술을 바라보는 허영심과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큰돈이 오가는 미술계와는 다르게 음악계에서는 아직도 고전-후기낭만 시대의 음악이 대세라, 음악계의 고민은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이 위축되어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예전에 만났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Krzysztof Penderecki)의 제자가 말하길, 펜데레츠키는 이 문제에 대해 고전음악이 현대음악으로 발전해왔던 방법 - 규칙의 파괴 - 이 도를 넘었고, 현대음악도 예전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거나말거나 마무리는 아름다운 카를성당 (Karlskirche) 야경으로. 지금까지 본 빈 시내 성당 중에 외관이 제일 아름답다.

Karlskirche, Wien

Das Leben in Wien/Alltag: 일상

2019. 06. 20. Sommernachtskonzert Schönbrun

베를리너 필하모니커 (Berliner Philharmoniker)에게 발트뷔네 연주회 (Waldbühnekonzert)가 있다면 비너 필하모니커 (Wiener Philharmoniker)에게는 쇤브룬 여름밤 연주회 (Sommernachtskonzert Schönbrun) 있다.

원래부터 한 번쯤 가보려고 했는데, 오늘 성체성혈대축일 (Corpus Christi)로 휴일인 데다가 가자고 하는 동기들이 있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오후에 비가 세차게 내려서 다들 걱정했으나, 약속시간 근처 돼서는 다행히 비가 그쳐서 갈 수 있었다.

Programm

L. Bernstein - Overtüre zu "Candide"
J. Strauß (Sohn) - Jubilee Waltz, o.op.
G. Gershwin - Rhapsody in Blue
M. Steiner - Casablanca-Suite
J. P. Sousa - Stars and Stripes Forever
S. Barber - Adagio for Strings
C. M. Zieher - Sternenbanner-Marsche, op. 460
A. Dvořák - Symphonie Nr. 9 in e-Moll, op. 95 ‘Aus der Neuen Welt’, 4. Satz, Allegro con fuoco

Wiener Philharmoniker
Gustavo Dudamel, Dirigent
Yuja Wang, Klavier

프로그램의 테마는 미국.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번스타인 캔디드 서곡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있어서 특히 맘에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곡이 신세계로부터... 차라리 코플란드 애팔래치아의 봄을 넣지. 슈타이너 카사블랑카 모음곡은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는데 '라 마르세예즈'가 계속 나와서 프랑스인 H가 신나 하면서 들었다. 마지막 신세계로부터 4악장은 프로그램 중에 제일 클래식한 곡이라서 그런지 좀 더 신경 써서 연주하는 게 느껴졌다.

Schloß Schönbrun, Wien

비가 그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음악에 맞춰 조명이 바뀌고, 사람들이 미소짓는다. 두 번째 앙코르로 슈트라우스를 연주하자 사람들이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얼마나 즐거운 모습인지! 마지막에 불꽃놀이를 기대했건만 아쉽게도 깜짝쇼는 없었다. 공연이 다 끝나고 스폰서인 롤렉스 로고를 쇤브룬 궁전 벽에 비추는데 오스트리아인 A가 "Thank you Rolex!"라고 외친다. 얘도 완벽한 정상은 아니다.

연주의 완성도는 신경쓰지도 않았고, 그걸 판단할 만큼 집중해서 듣지도 않았고, 그저 이 분위기가 좋았다. 내년에도 오늘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면 다시 와야지.

p. s. 혹시 이 글을 보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U4 Schönbrun역보다는 Hietzing역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공연장까지의 거리는 Schönbrun역 보다 아주 조금 멀지만 대신 덜 붐빕니다. 가실 때에도 Heiligenstadt 방향 U4를 타신다면 Schönbrun역의 인파를 피해서 먼저 자리에 앉아서 가실 수 있습니다. 내부에 음식물 및 음료수는 물론 우산, 유모차, 돗자리 등등 모두 반입이 불가하니 가벼운 차림으로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합니다.) 내부에서 맥주 및 와인, 샌드위치랑 쿠키 등을 판매합니다. 앉는 것은 안되고 일어서서 봐야하므로 튼튼한 다리를 준비하시고, 시야를 위해서는 일찍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희는 약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Neptunbrunnen 뒤의 언덕으로 가시면 그곳은 Schönbrunner Schlosspark가 아니기 때문에 (입구가 다름) 돗자리를 가져와서 앉을 수도 있고 음식과 음료 모두 반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 1 ]  [ 2 ] 

푸터바

태그

알림

이 블로그는 구글에서 제공한 크롬에 최적화 되어있고, 네이버에서 제공한 나눔글꼴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카운터

  • Today :
  • Yesterday :
  • Tot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