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erfantasie

2019. 06. 01. Paris, France

HY를 마중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EUROLINES28 Avenue du Général de Gaulle, 93170 Bagnolet (구글지도 링크)

HY는 어젯밤에 케임브리지에서 버스를 타고 런던에서 환승해서 밤새 달려 파리에 아침에 도착한 것이다. 얘도 진짜 대단하다. 만나서 카르네 (Carnet) 10장을 사고 개선문 (Arc de Triomphe)으로 향했다.

답 없는 파리 지하철. 영어로 된 안내사항도 없이 개선문이 가까이 있는 샤를 드 골 에투알 (Charles de Gaulle - Étoile) 역에서 RER A가 정차를 안 한다. 설마 한쪽 방향만 안서나 (빈에서는 보통 공사를 한쪽 방향만 한다.)해서 다음 역인 라 데팡스 (La Defense) 역에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RER A를 탔다. 역시나 정차를 안 한다. 결국 오베르 (Auber)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나와서 나비고 (Navigo)를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전날까진 청바지를 입고 다녀서 주머니에 카드가 잘 있었지만, 더워졌다고 헐렁한 반바지를 입었더니 열차에 앉았을 때 흘러내렸나 보다. 하... 빈에서는 공사하는 곳이 있으면 몇 정거장 전부터 어느 방향 어느 역을 며칠부터 며칠까지 공사해서 정차 안 한다고 독일어와 영어로 계속 방송을 해준다. 역 게시판에 붙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빌어먹을 RER A를 안 탔으면 나비고를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텐데!

우선 당분간 HY가 산 카르네를 사용하기로 하고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오렌지 주스를 먹은 후, 지나가다 만난 빵집에서 디저트를 사 먹으며 수다 떨면서 개선문으로 걸어갔다.

Arc de TriomphePlace Charles de Gaulle, 75008 Paris (구글지도 링크)

거대한 개선문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서로 사진 찍어주고, 바로 앞의 샹 젤리제 거리 (Avenue des Champs-Élysées)로 향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샹송 '샹 젤리제' (Les Champs-Élysées)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다가 본 기념품점에 마음에 드는 열쇠고리와 엽서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더 싼 데서 사기로 하고 지나쳤지만 그 뒤로 그와 같은 양질의 기념품은 볼 수 없었다. 개선문에서 에펠탑 (Tour Eiffel)이 크고 또렷하게 아주 가깝게 보이길래, 가다가 점심거리를 사서 슬슬 걸어가면 되겠다고 희망찬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큰 오산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는 에펠탑... 학부 1학년 때 이런 착시에 속아서 학교에서 가까이 보이는 어느 대형마트까지 힘들게 걸어갔다 온 적이 있는데, 나란 인간 도대체가 깨달음이라는 것이 없다.

Tour EiffelChamp de Mars, 5 Avenue Anatole France, 75007 Paris (구글지도 링크)

Tour Eiffel, Paris

결국 기진맥진한 상태로 에펠탑이 보이는 샹 데 마 (Champ de Mars) 공원에 도착하여 근처 마트에서 와인과 점심을 사서 공원에 앉아 여유를 부렸다. 날씨는 맑고, 바람은 살랑이고, 와인은 맛있고, 수다는 재밌다. 설문조사를 가장하여 소매치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다가왔지만, HY는 어쩜 영어 못하는 척을 그리 잘하던지. (우리 모임 중에 HY가 영어 제일 잘한다.) 그 사람들도 성의가 없는 게, 한국에서 설문조사를 가장하여 포교하시는 분들은 소품에 노력을 많이 들이시는데, 이 사람들은 박스에 쓰이는 종이에 A4용지 한 장 달랑 붙여서 다니니, 속아 넘어갈 수가 없다. 공원에서 여유를 부리고 HY가 가지고 온 화장품이 다 떨어졌다고 몽쥬 약국 (Pharmacie Monge)에 가야 한다며 길을 나섰다.

"온 지 한 달도 안된 애가 무슨 화장품이 벌써 다 떨어져...? 설마 면세점에서 안 사 왔니?"

"ㅎㅎ... 빨리 몽쥬 약국 가자 ^^"

Pharmacie Monge Eiffel Commerce13-15-17, Rue du Commerce, 75015 Paris (구글지도 링크)

몽쥬 약국, 얼마나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갔으면 한국인 직원'들'이 있다. 나는 딱히 필요한 것도 없고, 따로 수하물을 부치지 않아 가지고 갈 수도 없어서 구경만 했다. 쇼핑을 마치고 흡족한 얼굴로 챔스 결승을 보러 가야 한다는 HY. 펍을 찾아 들어가서 경기를 보려고 했으나, 한국 시각으로 '(새벽) 네 시'를 파리 시각으로 알고 온 HY 덕분에 또다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펍에서 나와 세느 (Seine) 강에 가면서 또 디저트를 사서 강가에 앉아 먹었다. 입은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넣어주어서 행복한 상태이지만, 몸은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만신창이. 둘 다 지쳐서 말없이 앉아있는데, 저녁은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야겠다는 HY가 갑자기 폭풍 검색을 하더니 한 자리가 남은 레스토랑을 찾아서 예약했다. 가는 건 좋은데 이런 거지꼴로 미슐랭 레스토랑에 출입 가능한 지부터 걱정되지만, 오늘밖에 시간이 없으니 어쩌랴.

예약 시간이 21:30이라 근처의 카페에 앉아서 타파스와 칵테일을 먹었다. 거의 로마 귀족이다. 하루 종일 먹기만 한다. 시간이 되어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Le Christine1 Rue Christine, 75006 Paris (구글지도 링크)

Le Christine, Paris

우리가 들어가는데 앞의 그룹이 극찬을 하며 나온다. 우리를 보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It is so light!"라고 하며 온갖 칭찬을 앞다투어 늘어놓고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간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리고 이내 그들이 한 말이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계속 먹었는데, 앙트레 (Entrée)는 입맛을 다시 돋우기에 충분했고, 모든 음식들이 삼키면 위로 넘어가지 않고 입에서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미식에 관한 만화에서 혀 끝에서 맛이 느껴진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심한 과장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혀 끝이 저절로 맛을 찾아다니더라. 그렇게 정신없이 감탄하며 두 시간 반 동안 식사를 하고,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숙소로 향했다.

파리의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은 정말 여느 레스토랑과는 다른 차원에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HY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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