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erfantasie

2019. 06. 02. Paris, France

우리가 묵은 호스텔은 파리 북쪽의 운하 옆에 있어 경치가 뭇 호스텔의 그것과는 다르다. 운하를 보며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짐을 챙겨서 마지막 행선지로 향했다.

HY도 가톨릭 신자라 파리에 온 김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자고 해서, WJ형이 강력하게 추천한 (안 가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 같은 분위기로 추천함.) 생 퇴스타슈 성당 (Église Saint-Eustache) 미사에 갔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사목적 이유로 주님부활대축일을 오늘로 미뤄서 지내지만, 유럽에서는 많은 나라가 주님승천대축일을 휴일로 지내기 때문에 오늘 유럽에서는 부활 제7주일 미사를 바친다. 

Église Saint-Eustache2 Impasse Saint-Eustache, 75001 Paris (구글지도 링크)

Église Saint-Eustache, Paris

생 퇴스타슈 성당에는 생 쉴피스 성당 못지않은 오르간이 있다. 그 오르간을 연주하는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도 있고. 하지만 오르간보다 더 감동적이고 위대한 것은 이 곳의 거룩한 전례였다.

대오르간의 즉흥연주를 시작으로 사제단이 입장한다. 사제도 여러 명, 복사도 여러 명에 부제와 흰색 비레타를 쓴 의전수도회 수사들도 같이 입장한다. 성가대가 없이 성악가 두 명이 회중을 이끈다. 사제가 제대 앞에서 복음을 낭독하는 동안 복사가 피운 향은 제대를 감싸고, 흡사 주님의 말씀이 구름 위에서 선포되는 듯한 효과를 낸다. 말씀의 전례 때 제대 앞에서 노래하던 성악가 두 명은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자 제대 뒤로 가서 노래하는데, 성당을 곱게 울려 마치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성가대오르간과 대오르간은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 같다. 함께 입장한 나이 많은 사제들과 복사들, 의전수도회 수사들은 사제석 양쪽에 앉아서 회중의 모범이 되어 거룩한 희생 제사에 참여한다.

이렇게 거룩한 전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사제, 부제, 수사, 복사, 성악가, 오르가니스트, 전례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함께 아름답게 지어진 성당은 땅 위에 하늘나라를 만들어내었다. 전례가 진행되는 내내 높은 창문에서 그림처럼 내려오는 빛은 이 미사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었다.

Église Saint-Eustache, Paris

미사가 끝나자 밥티스트 플로리앙 마를 우브라 (Baptiste-Florian Marle-Ouvrard)가 후주를 즉흥으로 연주했다. 생 쉴피스 성당 다니엘 로트의 주님승천대축일 미사 후주가 정교하고 섬세했다면, 오늘의 이 후주는 힘 있고 호소력이 있었다. 마지막에 스탑을 다량으로 열고 성당을 울려대는 화음을 듣고 어떻게 전율하지 않을 수 있을까.

Église Saint-Eustache, Paris

5일간 프랑스에서 본 것 중에 생 퇴스타슈 성당의 미사가 제일 감동적이었다. 이번 여행이 당분간 마지막 여행이 될 텐데, 그 끝이 이렇게 감동적이고 장대하게 마무리되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끔찍하고, 거리에서 인종차별도 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일처리 속도 등 기분 나쁜 것 투성이었지만, 샤르트르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 그리고 파리의 미슐랭 레스토랑과 성당들은 지금껏 다녀본 그 어느 곳 보다도 나의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다.

생 퇴스타슈 성당 앞 레 알 (Les Halles) 역에서 HY와 헤어져서 RER B를 타고 샤를 드 골 (Charles de Gaulle) 공항에 내려 빈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니, 한 달도 안된 이 곳이 오래 살던 집으로 느껴진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왔지만, 내 삶을 제일 크게 바꾼 것은 이제 빈을 타지가 아니라 나의 집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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