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ienische Nationalkirche Maria Schnee (눈의 마리아 이탈리아 국립성당)
Sam. 13. Jun. 2020.
오늘은 연구소에 가기 전에 눈의 마리아 이탈리아 국립성당(Italienische Nationalkirche Maria Schnee, 이탈리에니셰 나치오날키르헤 마리아 슈니), 다른 이름으로는 작은형제회 성당(Minoritenkirche, 미노리텐키르헤)이라고 불리는 성당을 들렀다.
Wiener Minoritenkirche, Minoritenplatz 2A, 1010 Wien (구글 지도)

1224년 오스트리아 공국(Herzogtum Österreich)의 레오폴트 6세(Leopold VI)는 꼰벤뚜알 작은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Conventualium)를 빈으로 부르고 수도원 부지를 내어준다. 그 이후 공위 시대(Interregnum)에 오스트리아를 장악한 보헤미아의 왕 오토카르 2세(Ottokar II)가 주춧돌을 놓음으로써 현재 성당의 모체가 지어지게 된다. 이 성당이 제 명칭보다는 작은형제회 성당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이후 합스부르크 시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의 아들 요제프 2세(Joseph II)의 종교정책에 따라 작은형제회는 현재의 알저키르헤(Alserkirche) 위치에 빈의 작은형제회 삼위일체 성당(Dreifaltigkeitskirche der Minoriten in Wien, 드라이팔티히카이츠키르헤 데어 미노리텐 인 빈)과 수도원을 지으며 이사하게 되고, 1784년 요제프 2세는 본래의 작은형제회 성당을 이탈리아인 신자들의 관할로 넘기고 이름을 이탈리아 국립성당(Italienische Nationalkirche)으로 바꾼다.

주제대의 성화는 이그나츠 운터베르거(Ignaz Unterberger)의 작품으로, 성화 안에서 천사들이 또 다른 성화를 공경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 속 성화의 원본은 이탈리아 로마의 크신 성모 대성전(Basilica Sanctae Mariae Maioris)의 보르게세(Borghese) 경당에 있는 로마 시민들의 수호자(Salus Populi Romani, 아마도 로마에서 제일 오래된 성모 이콘)로, 이 전체 성화는 크신 성모 대성전을 공경하기 위한 작품이다. 크신 성모 대성전의 전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왜 이 이탈리아 국립성당에 눈의 마리아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는지 단번에 알아챌 것.




주제대의 양 옆으로는 네 개의 조각상이 서있는데, 왼쪽에는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세례자 요한, 오른쪽에는 사도 요한과 앞서 말한 레오폴트 6세의 조각상이 서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를 나타내는 여러 점의 작품들이 이 성당이 본래 작은형제회의 소속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물론 프란치스코 성인도 이탈리아인이라 이탈리아 국립성당과의 괴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레오폴트 6세의 조각상 옆에는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Pietro Metastasio)의 묘비(Grabmal)가 있는데, 메타스타시오는 로마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빈의 궁정 시인으로 봉직한 후 미카엘 성당(Michaelerkirche, 미하엘러키르헤)에 묻혔다. 묘비의 하단에는 임종을 앞둔 메타스타시오에게 병자성사를 행하는 교황 비오 6세(Pius VI)와 하이든, 살리에리, 모차르트가 조각되어있다. 이 세 작곡가가 출현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메타스타시오의 작품으로 곡을 썼기 때문.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La clemenza di Tito, KV 621)의 원작이 바로 메타스타시오의 것이다. (비록 모차르트는 카테리노 마졸라, Caterino Mazzolà가 개작한 판을 썼지만...)

이 성당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대리석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최후의 만찬(L'Ultima Cena) 모작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갔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는 은총의 성모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 수도원 식당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만찬을 보고 깊게 감명받아 떼 오려고 했으나 당연히(!) 프레스코화를 뗄 수 없었고 그 대신 쟈코모 라파엘리(Giacomo Raffaelli)에게 모작을 만들도록 한다. 라파엘리는 프레스코화 대신 대리석으로 모자이크화를 만드는 방식으로 실물 크기의 최후의 만찬을 만들어낸다. 나폴레옹은 실각으로 이 작품의 완성을 볼 수 없었고, 대신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1세(Franz I)가 구입하여 이 작품이 빈에 오게 되었다. 프란츠 1세는 이 작품을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에 전시할 계획이었지만, 크기 문제로 결국 이 눈의 마리아 이탈리아 국립성당에 설치하였다. 원본과 다른 점이라면, 원본은 프레스코화 특성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훼손될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은 대리석 모자이크라 그때의 색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눈의 마리아 이탈리아 국립성당의 오르간은 현재 연주 불능 상태이다. 2개의 매뉴얼, 20개의 스톱을 가지고 있는 이 오르간은 1786년 요한 밀라니(Johann Milani)와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Ferdinand Hetzendorf)가 1673년의 프란츠 크사버 크리스토프(Franz Xaver Christoph)의 오르간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1972년에 아르눌프 클레벨(Arnulf Klebel)이 부분적으로 복원한 것 외에는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 복원을 위한 모금 진행 중.


눈의 마리아 이탈리아 국립성당의 종탑은 원래 첨탑이었으나, 두 번의 오스만 제국과의 공방전에 파괴되어 현재는 평평한 지붕만이 얹혀 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오스트리아 시골 출신으로, 악마로 변모하기 전에는 화가를 꿈꾸며 빈에서 그림을 그렸었다. 빈 미술학교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던 그가 빈에서 그린 그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성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그림은 2015년 독일의 경매에서 다른 히틀러의 그림과 함께 중국인 수집가의 소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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