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Geburtshaus und Schubertkirche (슈베르트 생가와 슈베르트 성당)
Sam. 03. Okt. 2020.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태어나서 빈(Wien)에서 세상을 떠났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본(Bonn)에서 태어나 빈에서 생을 마감했다.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은 빈에서 활동했지만, 로라우(Rohrau)에서 태어나고 죽었다. 그 시대에 빈에서 활동하며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작곡가들 중, 빈에서 태어나 빈에서 활동하고 빈에서 생을 마감한 진정한 비너(Wiener)는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가 유일하다.
현재의 빈은 23개의 구(Bezirk)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1구-인네레 슈타트(Innere Stadt)-가 성 스테파노 대성당(Stephansdom)과 왕궁(Hofburg)이 있는 본래부터 빈이었던 곳이고, 후에 교외에 있던 지역들을 하나씩 흡수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생가(Schubert Geburtshaus, 슈베르트 게부르츠하우스)와 슈베르트 성당(Schubertkirche, 슈베르트키르헤)은 현재의 9구 알저그룬트(Alsergrund)에 위치하고 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1797년 1월 31일 힘멜포트그룬트 72번지(Himmelpfortgrund 72)-현재 누스도르퍼 슈트라세 54번지(Nußdorfer Straße 54)- '춤 로텐 크렙센(Zum rothen Krebsen, 붉은 가재)'이라 불리는 곳에서 프란츠 테오도르 플로리안 슈베르트(Franz Theodor Florian Schubert)와 마리아 엘리자베트 카타리나 비츠(Maria Elisabeth Katharina Vietz)의 14남매 중 열두 번째로 태어났다.
Wien Museum Schubert Geburtshaus, Nußdorfer Str. 54, 1090 Wien (구글 지도)
슈베르트의 아버지는 보통학교(Trivialschule)의 교장으로, 이 집의 1층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슈베르트 가족은 이 아파트먼트의 부엌과 거실이 있는 가장 크고 비싼 방들 중 하나에서 머물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슈베르트 생가엔 가족들의 초상화들과 악보들과 편지 몇 점만이 있기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소장품은 아무래도 프란츠가 직접 쓰고 다니던 안경일 것이다. 안경을 썼던 대작곡가들이 얼마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욱 눈에 띄는 바로 그 슈베르트의 안경.
옆 방(본래 슈베르트 가족의 것이 아니었던)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는데, 이 피아노는 빈에서 제작된 피아노로 프란츠의 형인 이그나츠(Ignaz)의 것이다. 프란츠는 형인 이그나츠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연하게도) 몇 달만에 프란츠의 실력은 형의 그것을 앞질러 버렸다고 한다.
학생들이 많아지자 프란츠가 태어나고 4년 뒤 1801년, 그의 가족은 근처의 힘멜포트그룬트 10번지(Himmelpfortgrund 10)-현재 소일렌가세 3번지(Säulengasse 3)-로 이사한다. 프란츠는 이 힘멜포트그룬트 10번지에서 오랜 시간 살았는데, 현재 이곳은 자동차 정비소로 바뀌어있고 이 위대한 음악가의 흔적은 자동차 정비소의 이름과 건물에 붙어있는 현판에서만 찾을 수 있다.
Schuberthaus, Säulengasse 3, 1090 Wien (구글 지도)
Franz Schubert hat dieses Haus vom Jahre 1801 an durch eine lange Reihe von Jahren bewohnt. Hier als Schulgehilfe seines Vaters gewirkt und zahlreiche unvergangliche Werke darunter den 'Erlkönig' geschaffen.
프란츠 슈베르트는 1801년부터 많은 햇수를 이 집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의 학교 교생으로 일하였고, '마왕'을 비롯한 수많은 불멸의 곡들을 창작했다.
프란츠는 태어난 다음날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 속칭 슈베르트 성당으로 불리는 리히텐탈 열네 명의 거룩한 조력자 교구 성당(Lichtentaler Pfarrkirche zu den heiligen vierzehn Nothelfern, 리히텐탈러 파르키르헤 추 덴 하일리겐 피어첸 노텔페른)에서 1797년 2월 1일에 세례를 받았다. 슈베르트의 부모도 이곳에서 1785년에 혼인 성사를 올렸고, 리히텐탈 152번지(Liechtental 152)-현재 바트가세 20번지(Badgasse 20)-에 신혼집을 차렸었다.
Katholische Kirche Lichtental (Hl. 14 Nothelfer), Marktgasse 31-35, 1090 Wien (구글 지도)
Franz Schubert wurde in dieser Kirche 1797 getauft und wirkte hier als ausuebender und schaffender Kuenstler.
프란츠 슈베르트는 1797년에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연습 예술가 및 직업 예술가로 봉직했다.
프란츠는 일곱 살이 되자 리히텐탈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이자 합창지휘자인 미하엘 홀처(Michael Holzer)로부터 피아노와 오르간, 숫자 저음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홀처는 종종 프란츠의 아버지에게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슈베르트와 같은 학생은 만나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선생은 자신의 학생이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것을 알았는지, 프란츠가 그가 가르치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프란츠에게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곧, 프란츠는 빈의 대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에게 보다 심화된 음악교육을 받게 된다.
슈베르트가 연주하던 오르간은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원본은 1774년에 빈의 오르간 제작자 요한 미하엘 판츠너(Johann Michael Panzner)가 제작한 것으로, 이것을 기초로 1984년에 성 플로리안 오르간 제작 학교(Orgelbauenstalt St. Florian)가 약 2000개의 파이프를 본래에 있던 케이스에 교체해 넣으면서 완성된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는 남성의 군 복무가 의무였다. 프란츠는 17살이 되던 해(1814년), 아버지 학교의 교생으로 대체 복무하며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시작한다. 그 해에 프란츠는 리히텐탈 성당 건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첫 번째 미사곡 F major, D 105 (Messe in F-Dur, D 105)를 위촉받아 작곡하고, 초연은 같은 해 9월 25일 리히텐탈 성당에서 이루어졌다. 62명의 연주자가 참여하였으며, 형 페르니단트(Ferdinand)가 오르간, 스승 홀처가 합창단을,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마이세더(Josef Mayseder)가 악장을 맡았으며, 프란츠가 직접 지휘했다.
F. Schubert - Messe Nr. 1 in F-dur, D 105
이때 프란츠는 소프라노를 부른 테레제 그롭(Therese Grob)에게 반해 결혼하고자 하였으나, 당대의 결혼법과 프란츠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이듬해 1815년에는 미사곡 G major, D 167 (Messe in G-dur, D 167)과 B flat major, D 324 (Messe in B-dur, D 324)를 작곡했고 초연은 아마도 리히텐탈 성당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곡 '마왕 D 328 (Erlkönig. D 328)', '들장미 D 257 (Heideröslein, D 257)'가 작곡된 때도 이때이다.) 1816년에는 미사곡 C major, D 452 (Messe in C-dur, D 452)를 작곡하여 첫 스승 홀처에게 헌정하였다. 이 곡의 초연 또한 리히텐탈 성당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측된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평생 6곡의 미사곡과 '독일어 미사곡(Deutsche Messe, D 872)'이라고 불리는 성가 모음집을 작곡하였는데, C major 미사곡 이후의 A flat major 미사곡(Messe in As-dur, D 678)과 E flat major 미사곡(Messe in Es-dur, D 950)은 생전에 연주되지 못하였다.
Franz Schubert - *COMPLETE* Masses (with s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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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프란츠 슈베르트는 빈 근교 힘멜포트그룬트에서 태어나 19살(1816년)에 친구 프란츠 폰 쇼버(Franz von Schober)의 초대로 그의 어머니의 집에 머물게 될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며 리히텐탈 성당에서 네 곡의 미사곡을 초연하고 다섯 곡의 교향곡 및 다수의 성악곡을 작곡한다.
F. Schubert - Symphonie Nr. 5 in B-dur, D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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